[전문가 포럼] 대형 항공사고와 우한폐렴 확산의 공통점

입력 2020-02-05 18:23   수정 2020-02-06 00:13

1977년 3월 27일, 대서양의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공항에서 사상 최악의 항공사고가 발생했다. 이륙하던 네덜란드 KLM항공 보잉747이 활주로의 미국 팬암 보잉747과 충돌해 583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했다. 당시 사고 비행기들은 국제공항이 테러 위험으로 일시 폐쇄되면서 인근 소형 공항에 임시 착륙했었다. 혼잡한 공항은 관제사들의 업무 과중에 짙은 안개가 드리운 악조건이었지만, 기장들은 경험이 풍부한 회사의 간판급이었다.

사고 후 이뤄진 조사에서 조종실 내부의 문화와 관행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부기장과 항공기관사가 전문가적 의견을 기장에게 자유롭게 개진하지 못하는 수직적 문화가 문제였다. 특히 KLM의 신참 부기장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도 고참 기장의 고압적 태도에 눌려 자포자기한 상태였음이 밝혀졌다. 이를 계기로 ‘조종석자원관리(CRM: crew management system)’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핵심은 ‘전문성, 투명성, 개방성’에 입각한 판단과 행동이다.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자유롭고 분명하게 의사소통하고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문화 프로그램은 오늘날 세계 항공사에서 교육되고 있다.

2019년 12월 발생해 세계를 뒤흔드는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확산도 동일선상이다. 중국 보건당국은 우한시 수산시장을 발원지로 지목했으나 미국 워싱턴타임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중국 유일의 생물안전 4등급 연구시설(BSL-4)인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2017년 설립 당시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리처드 에브라이트 미국 럿거스대 교수가 “4등급 실험실의 안전 유지를 위해서는 열린 문화가 중요한데, 위계를 강조하는 중국이 이런 고위험 시설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보의 개방성과 투명성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러스 발원지를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고 이후의 확산 과정만 봐도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제한되고 상급자가 지시하는 위계적이고 후진적인 중국 조직문화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8일 최초 환자가 발생했지만 우한시는 정보 자체를 차단했다. 오히려 공안당국은 환자를 진료하고 위험성을 알린 의료인 8명을 괴담 유포 혐의로 체포했다. 지난달 11일 최초 사망자 발생에도 수수방관하면서 SNS 검열 강화 등 언론통제에 집중하다가 20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하고서야 도시 봉쇄 등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우한시장은 TV에 출연해 “초기에 정보를 공개하지 못한 이유는 중앙의 허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해 은폐를 사실상 시인했다.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고도 사실관계의 은폐와 호도에 급급한 중국 정부의 공식발표보다 해외 언론 보도와 SNS로 접하는 현지 소식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대형 항공사고와 우한 폐렴 확산은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운영에서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실증적 사례다. 예기치 않은 돌발적 상황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복잡적응계(complex adaptive system) 방식의 운영에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전문가 의견을 존중하며 개방적 태도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수평적 문화가 기반이 돼야 한다. 만약 디지털 시대의 복잡계로 진화한 현실을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수직적 위계질서에 기반한 단선적 명령과 강압적 통제로 대응한다면 파국적 결과는 불가피하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우한 폐렴 대응도 되짚어봐야 한다. 투명한 정보 공유와 전문가 의견 수렴, 개방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합격점을 주기 어렵다. 오히려 SNS로 유포되는 소위 가짜뉴스, 거짓정보의 단속을 강조하는 등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은 단순히 전염병 대응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디지털 시대의 복잡계 구조에 부합하는 문화와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는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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